Smashing Pumpkins - Machina/Machines of God

나는 메탈도 그런지도 아주 좋아하는데 그런고로 이런것들과 무섭도록 연관이 없는 스매싱 펌킨스를 좋아할 아무런 건덕지가 없었다. 이 요상한 밴드가 기천만장씩이나 파는 슈퍼밴드였다는게 그때는 도통 이해가 안됐다고나 할꺼나.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뮤지션이더라도 어떤 포인트가 감지는 되어야할텐데 나에게 이 밴드는 그게 통 없었다. 달시 렛츠키가 예뻐서 이 밴드가 유명하다고 억지부리기도 좀 뭐하고..거르기가 더 힘들었던 Mellon Collie & the Infinite Sadness같은 앨범은 그나마 상당히 잘 만져진 예쁜 락 앨범이고 대단한 음악적 야심이 느껴진 작품인걸 부인할 생각은 없으나 글쎄..뭐 취향이 아닌걸 어쩌랴. 난 정말 그렇게 대단한줄-일단 너무 길다-은 모르겠는걸 어째.

 

빌리 코건의 독단적 운영이 치사량에 달해 'Adore'를 거의 지 좆대로의 솔로앨범 수준으로 내놓고 승승장구만을 거듭하던 커리어에 첫 실패의 쓰라린 맛을 본후 나름 절치부심, 약쟁이 드러머 Jimmy Chamberlin을 복귀시키고 역시 마약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배우 데뷔를 한다는둥 밴드에 집중하지 못하는 달시 렛츠키를 해고-사실 집중해도 크게 밴드에 득이 될만한 음악적 역량이 있지도 않았지만-하고 Melissa Auf der Maur를 영입하며 본작 'Machina'를 발표한다. 얼트락의 범주에 우겨넣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던 전작 Adore를 생각(물론 애초에 외도에 가까운 작품이긴 하지만)하면 밴드 역사상 가장 헤비하다해도 무방한 본작의 탑트랙 'The Everlasting Gaze'의 부랄 떨리는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또 머리가 띵할 정도로 놀랍다. 이 밴드의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초기작들이 인디락 갬성+사이키델릭에 클래식 헤비메탈의 기타를 얹는 식의 작법을 택했다면 Adore부터의 펌킨스는 고딕/신스락의 차가운 옷을 입은 다소 무겁고 '사이키'한 분위기를 가지는데다 이 앨범은 특히나 전작을 의식한 억텐이 조금 있다고 할까 굉장히 하드하고 펀치감이 좋은 메탈 사운드를 뿜는데 이게 기존의 스매싱 펌킨스다운 나른한 팝 넘버들-혹시 제임스 이하가 쓴 곡인가 싶을 정도-과도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우러져 있다. 야심가 빌리 코건답게 Neo-Psychedelia라 일컬어지는 기계음이 혼란스럽게 늘어지는 환각적 넘버들을 배치하는 시도들도 짬짬이 곁들인다. 그런지의 시대에 메탈도 그런지도 아니면서 홀로 고고하게 신선놀음하던 무근본 잡탕밴드다운 저력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헤매고 있는 빌리 코건이 마지막으로 반짝이던 앨범이랄까..굉장히 다채롭고 강렬한 사운드를 담은 이 앨범은, 마치 끝날걸 알고 있었던것 같다. 이미 린킨 파크나 마릴린 맨슨같은 밴드가 활개치던 세상이라 이들의 시대는 간 지 오래였고 앨범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더이상 사이가 나쁠수 없던 빌리 코건과 제임스 이하가 갈라서면서 자연히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Machina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스매싱 펌킨스 앨범이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