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gang - Aldrig i livet
이제는 그 존재 자체가 장르가 되었다고 할까, 21세기 데스메탈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단 한장..이란 소리까지 듣는 지경이 된 컬트 아이콘이 된 Demilich지만 사실 인터넷과 방구석 평론가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뮤지션 중 하나가 아닐까도 싶다. 93년에 앨범 한장 내고 해체한 핀란드 밴드가 인터넷도 없이 무슨놈의 영향력은 영향력이야.. 온갖 그지같고 이상한게 범람하는 데스메탈씬에서도 단연 튀는 수준으로 파격적이고 개똥같았던 Demilich는 어쨌거나 타이밍이 좀 많이 늦긴 했지만 두각을 나타낸거 자체는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 싶다. 과도하게 유니크한 사운드를 쌩뚱맞고 외진 땅에서 구사하고 있었던게 잘못이었을게다.
처음 Demilich가 후대의 '뮤지션'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된건 아무래도 캐나다의 Chthe'ilist가 먼저였다. 다만 음정이 거의 없는 수준인 극저음의 보컬, 지나치게 탄력적인 베이스같은 Demilich의 특징적인 부분이 있긴 했어도 Chthe'ilist는 보다 본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입히려는 시도를 많이 했던 밴드였다. Gorguts로 대표되는 캐나다 테크데스의 색채도 강했고 Synth를 적극 활용해 Cosmic한 분위기를 제법 근사하게 연출하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목구녕이 포도청이었던건지 ep만 한장 더 내놓고는 전형적인 캐나다 테크데스 밴드인 First Fragment를 결성해 멤버들이 흩어져버린게 문제였다. 뭐 FF가 워낙 인기가 좋으니 잘 됐다 해야겠지만..
한편 비슷한 시기에 덴마크에서도 Demilich의 카피캣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이쪽은 꽤나 곧이곧대로 원형을 카피하는데다 갬성이 더더욱 시궁창of막장이라는 환장할 버전이었으니 바로 Undergang이다. 싹수를 알아본 Dark Descent (Timeghoul같은 전례를 비춰볼땐 단순히 레이블이 선호하는 타잎의 밴드여서일지도)가 꽤나 일찌감치 달라붙었고 업계의 베테랑이라 할만한 Greg Wilkinson이 거의 전담마크로 붙었다. 좀 먹물스러운-뭐 실제로 잘하기도 했지만-끼가 있던 Chthe'ilist와 다르게 Undergang은 Demilich 재현도가 상당히 높은데다 사운드 자체가 펑크나 초창기 Autopsy를 언급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직선적이고 심플하다. 모든 좆같은 데스메탈의 아버지 취급을 받는 Demilich의 갬성적 부분마저 계승하고자 하는지 Undergang은 어지간한 고어그라인드 밴드가 울고 갈 지경으로 시체썩는내가 진동을 하는 쓰레기같은 갬성이 상당히 도드라진다. 보컬새끼 안 어울리게 그림실력이 좋아서 꼬박꼬박 꼼꼼하고 세심하게 좆같은 커버아트를 그려내는건 덤. 20년 앨범인 본작은 그래도 우리 한번 이름을 떨쳐보자 싶었는지 뮤직비디오도 찍고 거의 사용되지 않던 기타솔로를 적극적으로 삽입하는등 비교적 제도권 메탈(?)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많이 했다. 뭐 그런만큼 리프의 육즙이 좀 빠지고 쫀쫀함이 이전에 비해 다소 덜한 아쉬움이 있긴 한데 뭐 좀 더 먹기 편하게 가공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Chthe'ilist가 없는 지금(공식 해체는 안했으니 재가동의 여지..가 있을지)은 상당히 소중한 병신같은 놈들이다.. 더구나 어느정도 '타협'한 사운드가 이정도라면 그 곤조가 상당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병신팬들이 오죽이나 귀찮게 굴어서인지 Demilich도 나름 공연도 다니고 하던데 Undergang도 잘되고 하면 Demilich가 새 앨범을 낸다거나 하는 일도 어쩌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