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결산
이러저러하여 꽤 한동안 음악을 듣지않았던 것도 있고 음악이란게 듣기에 따라 죄다 다를텐데 쌀이 나오는것도 아니고 내가 뭘 끄적이는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늙어서 귀찮기도 하여 글적는걸 포기하였는데..아무도 안보는 방송국놈들도 연말이라고 서로 기를 쓰고 대딸을 해주는데 나라고 안될거 있나 싶기도 하고 시간있을때 조금 정리해두는것도 어떨까 싶어 적어본다. 쓰면서 느낀건데 요즘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메탈같은거 참 하지도 듣지도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짱깨병의 영향도 있겠지만 역시 젊은 피들이 하기엔 이제는 가성비가 너무 안좋은 음악일테지..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씬에 질 떨어지는 유행조차도 없는거 같아 암울하다.
Envy - The Fallen Crimson
업계의 간판이자 상징과도 같은 엔비지만 이제는 냉탕과 열탕을 마구 넘나드는 격렬한 감정의 진폭같은건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데뷔 20년이 넘어가는 고령밴드에게 그런 기대까지 거는게 외려 무리겠으나.. 사실 과도하게 달달뽀짝한 포스트락 풍의 전개나 문득 내레이션 앨범인가 정신이 한번씩 들 정도로 넋두리에 가깝게 들리는 미칠듯한 내레이션 떡칠이나 피죽 한그릇 못 얻어먹은듯한 여보컬의 시도때도 없는 난입 등 맘에 안드는 구석이 적지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는 여전히 매우 아름답고 설득력이 있다. 투덜대며 정주행을 하고나면 그저 이들이 아직 현역인거에 감사할 일이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된다.
Inquisition - Black Mass for a Mass Grave
내겐 도통 용서가 안되는 보컬리스트가 몇몇 있는데, 목소리가 듣기 싫어 밴드까지 안듣게 만드는 존재가 좀 있다. 조이 벨라도나라던가, 브루스 딕킨슨이라던가, 바비 블릿츠(이 사람이 마지노선) 제임스 라브리에 등등..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보컬리스트인지 알려줄 필요는 없다 목소리 자체가 듣기 싫은데 이유가 있나. 이 밴드의 다곤이 그렇다. 지그시 밟혀 압사당하기 직전 두꺼비의 단말마랄까 참으로 해괴망칙한 소리를 내는 보컬인데..이 앨범은 좀 감수하고 들을만한 값어치있는 사운드를 담고 있다 여겨진다. 사실 Inquisition은 뭐 이미 명망이 높을대로 높은 베테랑 밴드기는 하다. 본작이 특이한 점이라면 코스믹호러의 분위기가 많이 줄고 자연적 색채의 정서가 상당히 강해졌다는-거 뭐 앳모스페릭하다는 그거-것이고 남미밴드인데 차가운 북유럽의 공기가 느껴지는게 역시 해괴하다. 짬찬 밴드는 무섭다..는것 그리고 보컬 비중이 그리 높진 않아서 듣기에 많이 부담스럽지 않아 그나마 다행스럽다.
Drain - California Cursed
어디서 솟았는지 모를 이 경력도 일천-ep몇개도 포함시켜주나요?-한 캘리포니아 밴드 Drain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펑크/하드코어/메탈돼지를 모두 싸게 해줄 놀랄만한 메탈릭 하드코어 토탈 패키지를 들고 데뷔했다. 다이나믹한 메탈 에센스도 가지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펑크/하드코어의 헐렁하고 리드믹한 파티 그루브도 고루 놓치지 않는 놀라운 감각을 보여주는데 데뷔작답게 테크닉이라던가 송라이팅에서 조금씩 철두철미하지 못하고 좀 대강 문대는 감은 있지만 곧 보완될수 있는 부분이라 여겨지기에 간만에 하드코어씬에서 물건이 나왔다는 느낌.
Maggot Heart - Mercy Machine
이 밴드의 작곡기타보컬얼굴마담을 도맡고 있는 Linnéa Olsson은 내가 아는한 지구 여자 기타리스트 중에 가장 쿨시크한 톤을 보유한 능력자다. the Oath, Grave Pleasures등의 기타리스트를 거쳤고 결국 북치고 장구치길 선택한 대장부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론 하드락/개러지/포스트펑크 밴드등으로 불리우지만, 핵심은 북유럽 락/메럴 뮤직 특유의 음습함과 슬래쉬&이지 스트래들린을 동경한다는 그녀의 꾸덕한 손맛이 동시에 함유된 지극히 매력적인 기타플레이가 아닌가 한다. 좀 더 주변의 지원을 받는 쪽이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지만 능력이 받쳐줘서인지 기질 자체가 독고다이인듯. 음악적으로 그렇게 대단하다 할건 없을지 몰라도 매우 즐겁게 듣고있다.
Necrophobic - Dawn of the Damned
언제나의 네크로포빅이고 하던거(물론 조금 모던한 버전으로) 하는 앨범이지만..그냥 틀면 술술 듣게 된다. 기본적으로 적절한 멜로디를 함유하고 달리는 밴드인만큼 듣기 수월한 형태이긴 하나 만만찮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사운드를 깔끔하게 손질해 물 흐르듯하니 꿀떡꿀떡 듣지 않을 재간이 없다. 과도한 깔끔함으로 인해 북구 특유의 음습함이 거의 소멸되다시피 한 점은 아쉬우나 버릴건 버리는 판단이 롱런의 비결일지도. 한 30년은 쉬지않고 달리고있는 이들은 하얗게 불태우고 젊어서 죽자는 힙스터들에게 걸쭉한 가래침을 뱉는 생계형 메탈러의 표본과도 같다.
Tallah - Matriphagy
그 마이크 포트노이의 아들 맥스 포트노이가 드러머로 재직중인 뉴메탈-데스코어 밴드. 이어에이크와 계약했다해서 아무리 틀딱레이블이래도 진짜 미쳤구나 싶었는데 사운드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당혹감은 슬립낫 데뷔작을 들었을때나 느꼈던것 같은데.. 아들들 무지성으로 밴드에 밀어넣던 막스 까발레라와는 달리 포트노이는 제대로 키워냈구나 싶다. 앨범은 그다지 새로운것은 없지만 잘 나가던 뉴메탈 밴드들의 특징적인 강점들을 모조리 대놓고 때려붓는데 그것이 어색하거나 과하지 않고 아주 잘 어울리고 있다. 간이 기가 맥힌 누렁이밥같다고 할까.. 키보드 샘플러 턴테이블 갖다놓고 온갖 가오는 다잡는 요즘 밴드들 사실 흔하게 보이는데 불협화음 빗다운 들입다 쳐발르면 다되는줄 아는 그네들의 한심한 송라이팅에 비하면 이들은 확실히 감각이 날카롭다는 생각이 든다. 뉴메탈 좋아하는 팬이라면 이건 정말 참기 힘든 앨범일 것이다.
Psychonaut4 - Beautyfall
DSBM의 영원한 아이돌이자 상업적 정점일것만 같던 Shining이 지지부진한 틈을 타 빠르게 치고올라온 밴드. 지지부진이고 뭐고 아예 방향성 자체를 상실한 느낌인 Shining에 비해 포스트-블랙적인 요소들과 멜로디/서정성을 모두 받아들여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멜로딕한 접근은 Shining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지만 어쩐지 강도의 조절을 좀처럼 못하는 느낌인 반면 이들은 고딕락/프록락의 그것만큼이나 고급지고 자연스러운게 강점이라고 해야겠다. 고인 물은 썩을뿐..이런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역시 Shining은 다시 광폭화가 답인듯 하다.
Ripped to Shreds - Luan
Andrew Lee라는 뮤지션이 드럼 제외 단독으로 모든걸 해치우는 데스메탈 밴드. 애니덕후처럼 생긴 놈이 네오클래시컬 스탈 앨범도 내고 재주가 많다. 밴드명도 Horrendous의 곡명에서 따왔고 Damian Herring이 쭉 이 친구의 작업에 스튜디오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재능을 인정하고 음악적 친구가 된 상태인듯? Horrendous가 그랬듯 이 밴드도 미국밴드지만 뉴욕이나 플로리다 데스의 저돌적인 스타일보단 Dismember나 Bolt Thrower를 연상케하는 탄력적인 리듬감과 멜로디 감각을 보여준다. 파워를 간과하진 않지만 감상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데스랄까, 그러면서도 전반적인 인상은 상당히 오소독스하다는 느낌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Horrendous와 베프를 먹을 정도면 재능이야 의심할 필요가 없지않을까 싶다.
Cryptic Shift - Visitations From Enceladus
장르 자체가 신인이 손을 대기도 쉽지않은 본격 코스믹 Sci-Fi 테크뎃/스래쉬 업계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진 영국밴드. 도저히 신인이라곤 믿기 어려운 곡 구성력과 연주가 경탄할만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요소들이 도처에 산재해있는게 찜찜하기도 하다. 대충 언급되는 밴드만 해도 벡터, 골것츠, 녹터누스, 호렌두스 등등 물론 하나같이 따라하기도 어려운 비범한 밴드들은 맞지만 오리지널리티의 부재를 짚어볼수 있는 부분인건 분명하다. 데이빗 디산토와 같은 강렬한 보컬이 어그로를 끌어주면 얘기가 쉬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좀 있으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작 오프닝 트랙에 설득력있는 26분짜리 넘버를 때려박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패기는 이들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Warbringer - Weapons of Tomorrow
과도한 모던화를 꾀한 결과가 좋지못했고 씬의 침체기가 맞물리며 센추리 미디어에서 네이팜 레코드로의 좌천(?)을 피할수 없었던 워브링어..지만 오히려 좌천 이후가 더 좋다. 어느덧 중견이 되었달 정도로 짬도 먹었고..예전같은 폭력적인 패기는 많이 죽었지만 비장미가 돋보이는 원숙함에선 정도를 걷는 자들의 뚝심 같은게 느껴진다. 사실 전작까지만 하더라도 꽤나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본작에선 좀 많이 깎여나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진행이 차분하고 멜로디컬한 기타웤이 중심을 잡고 있다. 나 역시도 중년초입에 다다른지라 편하게 듣기엔 이쪽이 낫다 싶기도 하고..같이 나이를 먹는게 느껴진다 해야하나 뭔가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다.
Odraza - Rzeczom
진한 디프레시브 갬성과 난폭함을 겸비했던 전작과는 궤를 상당히 달리하는 앨범이다. 물론 이들을 기다리다못해 이름을 잊을 정도로 텀이 너무 길기도 했지만..각설하고, 발랄하다고까진 못하겠지만 상당히 도회적인 인상이 강해졌다. 샤이닝의 할름스타드 앨범에서 총을 물고 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한껏 차려입고 폴란드 밤거리에 나타난 느낌이랄까..이 또한 모던 블랙의 한 부분으로 봐야할런지 정말 블랙처럼은 안 들리는 트랙들도 제법 존재한다. 아주 큰 틀만 남겨놓고 마음껏 하고싶은대로 날뛴다. 듣는 입장에 따라 아주 불쾌한 요상한 앨범일수도 있겠고, 블랙풍의 보컬을 꺽꺽대는데도 상당히 신나고 유쾌한 앨범일수 있겠다. 나야 물론 후자.
Fuck the Facts - Pleine Noirceur
훡 더 팩츠는 그래도 왕년-까지도 아니고 한 10년전?-에 상당히 잘 나가던 그라인드 밴드로 기억하는데 앨범 내는 텀이 점점 길어지고 망작도 나오고 하며 어영부영 잊혀진 밴드가 된 느낌이다. 릴랩스에선 퇴출되지 오래고.. 여하간 본작은 한때 꽤나 광기어린 그라인드/매쓰코어 밴드였던 지난 모습은 많이 없다. 나이를 먹은 것도 있겠고 업계에서 슬슬 뒷전으로 밀리는 회한같은것도 있겠고..앨범 전체가 회한이나 비애감같은 감정들이 뒤덮고 있는 나름 감성적인 앨범이다. 사운드는 많이 얌전해졌지만 태도만큼은 그리 둥글둥글하지 않다. 여전히 이 밴드 특유의 뒤틀린 분노, 시니컬한 감정들이 표면 아래 도사리고 있다. 부활의 신호탄 같은 표현을 쓰긴 쉽지 않지만 곱게 물러날 생각은 전혀 없는듯해 보인다.
Afterbirth - Four Dimensional Flesh
'명상하는 슬램데스'라니..이 개같은 명제를 현실화하는 놀라운 밴드가 Afterbirth다. 아직은 프로토타입 단계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들은 분명 프록메탈/테크-데스에서나 맛보던 재즈적인 어프로치나 '앳모스페릭'한 사운드의 특성을 설득력있게 슬램데스에 녹여넣는 시도를 하고있고 일정부분 성공하고 있다 느껴진다. 굉장히 재미있고 혁신적인 밴드이고, 당신이 무언가 새로운 익스트림 사운드에 목마른 메탈팬이라면 언제고 이들의 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참하게 될것이다.
Unlucky Morpheus - Unfinished
게임 음악인지를 편곡/커버하는 걸로 시작된 밴드라곤 하는데 정확하게 무슨말인지는 잘 모르겠고 하여간 덕스러운 무언가를 하다 본격화된 팀이라고 보면 될거같다. 전작까진 일본애들이 특히 좋아하는 오밀조밀한 기타+뽕삘 한껏 머금은 화려한 멜스메 노선을 고수했다면 본작에선 그리 특별할건 없는 테크닉 지랄에 매몰되느니(이들이 못한다기보다 업계가 원체 고이다 못해 석유가 된 탓) 군더더기는 쳐내고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찾자는 의도가 엿보인다. 상당히 파워풀하기도 하고 전반적인 멜로디라인도 명료해졌을뿐더러 남용에 가깝게 빈번히 등장하는 바이올린이 업계 특유의 화려함을 많이 보충해주기도 한다. 출신성분이 어찌되었든 앨범에 곡이 더 많았으면 아쉬웠던 시점에서 이미 이들과 본작을 높이 평가. 올해작중에 단순히 많이 듣기론 이 앨범을 젤 많이 들은것같다. 부담없고 즐겁다.
Oranssi Pazuzu - Mestarin Kynsi
대강 싸이키델릭/블랙/아방-가르드 정도로 구분되는 핀란드 밴드고 누클리어블래스트와 계약을 따냈으며 '블랙의 미래'라는 소리마저 종종 들을 정도로 꽤 주목받는 라이징스타. 글쎄 블랙같다 할만한 독한 느낌은 사실 보컬 정도고..피치포크가 좋아할만한 프로기한 포스트 어쩌구 정도가 좀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난폭하거나 혼란스런 맛은 그다지 강하지않고 오히려 굉장히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쌓아올린 사운드스케이프가 최대강점이라 느껴진다. '뭐의 미래'라고 불리울 정도로 일반적인 지지를 얻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폐쇄적인 성격의 사운드인데..핀란드 냉골에 쳐박혀 몇년 순록고기만 먹인 중기 이후 라디오헤드나 좀 쉬이 들리는 카요닷같은 느낌인데 뭐 그래서 좋다는 말인것이다.
Sepultura - Quadra
탈퇴후 막스 까발레라의 행보도 그저 그랬지만 엄밀히 잔여 세풀투라의 상황도 썩 희망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최악의 앨범에서도 최소한의 엔터테인먼트적 감각은 유지했던 막스에 비해 이쪽은 이런저런 시도는 열심히 하는데 뭐하나 이렇다할건 없는, 공부 되게 열심히 하는 열등생같은 지리멸렬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 앨범만큼은 조금 다르다.. 현재 헤비씬에서 가장 바쁜 엔지니어가 아닐까 싶은 Jens Bogren과 주고 받은 영향일까, 사색적인 느낌의 진중한 맛이 대폭 가미되었고 이게 Andreas Kisser와 잘 맞는 느낌이다. 잊지 않고 배분해둔 직선적인 트랙들과의 밸런싱도 아주 좋다. 의심의 여지없는 Post막스 세풀투라 최고의 앨범일것이고, 늦어도 너무 늦게 나온게 한편으론 한탄스럽다.
Wayfarer - A Romance with Violence
와..이런걸 뭐라 해야될라나. 웨스턴 포크 블랙메탈? 이런걸 블랙이라고 부를수는 있나? 아무렴 어때 싶기도 하고 올게 왔구나 싶기도 하다. 햄버거 먹는 놈들이 무슨 블랙메탈 하던때도 있었지만 더이상 북미지역도 블랙의 불모지라 보기 힘든건 엄연한 사실이다. 북미 밴드들은 사탄타령보단 자연주의적 성향을 많이 보이는 느낌이긴 한데 이렇게 지역색을 강렬하게 입히고 쿨하기까지 한 사운드가 등장하는 날이 왔다. 이런걸 힙스터라 욕한다면 난 그냥 힙스터하고 힙스터를 쭙쭙 빨아주고 싶다. 구태여 흠을 잡자면 최소한의 공격성을 아슬아슬하게 유지못하는 느낌이 다소 아쉽긴 한데 대체로 터무니없이 충격적이고 즐거운 경험이다. 나는 음악 들으면서 이렇게 뒤통수 후드려맞을때 제일 신난다. 선곡이 가능하다면 'Vaudeville'은 내 장례식에서도 한번 땡기고 싶다. 눈물나게 멋지다.
Dark Tranquillity - Moment
갠적으로 dt의 개가 된지가 이미 오래인 입장이긴 하나 니클라스 순딘이 밴드를 관뒀단 소식은 역시나 충격이었고 불안요소였다. 순딘옹이 단순 기타리스트도 아니거니와 예스퍼 어쩌구를 잃은 인플레임스의 끝없는 자유낙하같은 전례가 없는것도 아니었..으나 기우였다. Fiction이후 묘하게 부유하던 사운드의 중심이 잡힌 느낌인데다 미카엘 스탠은 그야말로 절정에 이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키보드인 마르틴 아재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컸을수도 있고..신입멤버들의 솜씨 또한 예사롭지 않다. 크리스토퍼 아못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Andromeda, Nonexist등을 거친 요한 라인홀츠가 진흙에 파묻혀있던 원석이 아닌가 싶다. 기타뿐 아니라 작곡력이 비범한 점이 밴드의 미래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것(아마도)이다. 모던한 후기 스타일이 어느정도 방점을 찍은데다 양질의 수혈도 받았으니 다음앨범부터가 또 재밌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Demoniac - So It Goes
Vektor의 파괴적인 행보 이후-뭐 아직 해체는 안했다지만- 다시 이런 밴드가 등장할수 있을거라 기대하기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칠레의 Demoniac은 남미의 뜨겁고 애상적인 멜로디 라인과 리프를 산처럼 쌓아올린 피도 눈물도 없는 테크-스래쉬와 결합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충격적인 모습으로 빚어내는데 성공하는 놀라운 밴드다. 아직은 전반적으로 투박한 구석도 있고 어쩌면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데 조금은 모호한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만 머지않아 정말 무서운 존재가 될만한 자들이 틀림없다. 적어도 남미메탈의 최고봉쯤은 이미 예약한 수준. 무엇보다 Vektor가 살아날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아 이들이 어떻게든 잘해줘야 할 필요도 있고..커흙
Abigor - Totschläger (A Saintslayer's Songbook)
씬의 최고참에 가깝게 짬을 먹었음에도 기량에 비해 인지도가 아쉬운걸론 한손에 꼽아도 좋지않을까 싶은 아비고르가 연말에 던져놓은 폭탄. 불모지인 모짜르트국 출신/인간미 더럽게 없는 블랙/아방-가르드 스타일 뭐 따져보자면 인기없을 조건은 다 갖췄지 싶기도 하나..한번 한걸 또하는걸 병적으로 싫어하는듯한 탐구정신으로 일관된 커리어에 어울리지 않는 이른바 총집편(물론 비교적 중기 이후 한정)에 가까운 앨범이다. 차갑고 악독한 특유의 분위기, 음악인데도 아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생각이 없는 무저갱-의식적으로 곡을 조지는 Deathspell Omega등과는 또 다르다-스러움, 한편으로 그저 부수고 달리는 독살스런 테크닉적 쾌감은 충족하면서 의외로 꼬순내 나는 맛깔나는 솔로잉도 수시로 등장, 거대한 서사인듯 하면서도 어느순간 아무것도 아닌 지랄같기도 한데 난잡하진 않고 대단히 깔끔. 하여튼 시종일관 능수능란한 괴물같은 면모를 뽐내는 본작은 올해의 앨범뿐 아니라 그들의 최고작을 다퉈볼만하다.